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의 대응 방식은 규모에 따라 뚜렷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시스템 중심, 중견기업은 절충형, 중소기업은 생존형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 사례와 함께 각 기업군의 대응 전략을 비교 분석합니다.
대기업: 체계적 대응과 자율규제 강화
대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부터 안전 경영에 적극적이었으며, 법 시행 이후에는 이를 더욱 정교하게 시스템화했습니다. 대기업들이 갖춘 자본력과 인력, 그리고 경영 리더십의 의지가 맞물리면서, 단순히 법을 지키는 수준을 넘는 전략적 대응이 가능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선제적 리스크 대응 시스템, 통합 안전 플랫폼, 전사적 안전문화 정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공장 단위의 위험 분석을 넘어서, 부서별 위험 인덱스를 수치화해 경영진이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LG화학은 AI 카메라를 활용한 무인 위험 감시 시스템과 작업자 안전이탈 감지 시스템을 도입해 사고 이전에 방지하는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현대건설은 BIM 기반 가상 시공 훈련으로 실무 교육을 강화하고,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현장에는 사전 인증 제도를 도입해 이중 점검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또한 대기업은 ESG 및 글로벌 기업평가에서도 ‘안전 지표’가 비재무성과 요소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해외 투자자들을 위한 투명한 안전 보고서 발행과 내부통제 수준을 지속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기 법률 대응이 아닌, 지속가능 경영 전략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으며, 사회적 책임(CSR)의 일환으로 협력사 안전 관리까지 확대 적용하는 추세입니다.
중견기업: 법 대응과 운영 현실의 균형
중견기업은 대기업처럼 모든 시스템을 갖추기는 어렵지만, 일정 수준의 조직력과 예산이 확보되어 있어 법적 대응과 실무 현실 사이에서 균형 있는 전략을 모색합니다. 이들은 주로 외부 전문기관과의 협업, 핵심 공정 중심의 부분 대응, 문서 기반의 법적 형식 충족이라는 방향으로 대응 체계를 구축합니다.
예를 들어, 한 중견 식품 가공업체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사내 안전 담당자를 배치하고, 매 분기 1회 이상 외부 전문가 점검을 정례화했습니다. 하지만 전 공정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하거나, 표준화된 툴 없이 일반화된 체크리스트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대응력에는 제한이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중견기업은 "적발되지 않기 위한 대응" 수준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제한은 법률적 해석 능력 부족, 현장직과 사무직 간 소통 부재, 보수적 조직문화에서도 기인합니다. 일부 기업은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외부 법무법인과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내부 체계와 실행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문서화된 대응이 실효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또한 중견기업 경영진은 중대재해 대응을 단기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장기 전략으로 연결되는 비율이 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견기업은 변화 가능성이 있는 계층입니다. 정부의 지원사업, 인증제도, 협회 중심의 교육이 확대된다면, 중견기업은 자율안전체계의 실질적인 허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정책 설계 시 중견기업에 대한 중간 수준의 맞춤형 가이드와 기술 지원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중소기업: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대응
중소기업은 법 시행 이후 ‘준법’보다는 ‘처벌 회피’에 초점을 맞춘 대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구조적 현실 때문입니다. 인력, 시간, 예산, 안전 노하우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법적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중대재해법은 2024년부터 본격 적용됐지만, 많은 중소기업은 여전히 무대응 상태에 가깝습니다.
한 예로, 수도권의 한 소규모 목재 가공 업체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사장 본인이 관리책임자를 겸하고 있지만, 실제로 작업장 위험 요소에 대한 사전 점검이나 구조적 개선은 전무한 상태입니다. 교육 이수는 사후에 형식적으로 진행되며, 안전교육 문서와 표지판을 붙이는 정도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또한 정보 접근성의 한계에 놓여 있습니다. 법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렵고, 법률 해석을 지원해줄 안전전문가나 변호인을 고용할 여유도 없습니다. 특히 하청, 재하청 구조로 운영되는 업종에서는 책임소재가 모호하여, 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최종 경영자가 형사 책임을 지게 되는 구조가 대부분입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안전관리체계 컨설팅 지원, 중소기업 맞춤형 KOSHA 프로그램, 안전교육 무료 이러닝 플랫폼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이 제도를 인지하거나 활용하는 비율은 극히 낮은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안전은 비용’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중소기업에겐 단순한 행정지침이 아닌, 실질적이고 현장 밀착형 대응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지역별 안전센터에서 출장 점검 및 즉시 개선 코칭을 지원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이는 법 준수의 실효성을 높이는 동시에,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률이지만, 각 기업의 현실은 천차만별입니다.
대기업은 전략적 시스템 대응,
중견기업은 형식과 실무의 절충,
중소기업은 생존과 유지가 중심인 최소한의 대응이라는 패턴이 고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책 입안자는 단일한 규제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계층별 접근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형식이 아닌 실질 중심의 산업안전 문화가 정착될 수 있습니다.